순례길 20일 차 유독 힘든 하루였다. 어제 비 맞고 힘들게 걸어서 그런지 오늘 유독 체력소진이 빨리되었다. 2번째 마을까진 가깝다. 그 후부터가 오늘의 지침이 시작됐다.
어제와 다르게 오늘의 시작은 맑은 하늘과 약한 바람으로 시작되었다. 그래도 바람이 약하니 걷는데 힘들지 않은 것 같다.
처음에는 여권이나 지갑, 핸드폰, 워치 등 물건을 꼭 챙기고 다녔었다. 알베르게는 누구나 들어올 수 있고 보통 밤 10시 전까진 오픈되어 있으니까 보조가방에 잘 간수하고 다녔다. 한 4일 차부터인가 보조가방은 걷는데 짐만 되고 배낭 속으로 던져 버렸다.
여권은 배낭 위쪽 주머니, 지갑은 바람막이 안주머니에 넣고 다니고, 알베르게 도착하면 여권은 배낭에 넣어둔 채 그냥 밖에 돌아다닌다. 워치나 버즈도 그냥 공용멀티탭에 둔 채 나갈 때도 많다. 여긴 거의 순례자들만 온다. 순례자들은 어느 나라사람이건 남의 물건에 관심이 없기 때문에 서로가 믿고 두고 다니는 것 같다.
관광지라면 꼭 챙겨 다녀야겠지만 여긴 생각 이상으로 안전하다. 맨날 만나는 사람들과 대부분 같은 방을 사용하고 이제 얼굴 보며 웃으며 인사도 한다. 2시간 반쯤 걸어 사하곤에 도착해서 카페에 커피를 마시러 갔는데 매일 보던 멕시코 친구가 순례길 절반 인증서를 같이 받으러 가자고 했다.
멕시코와 독일친구와 걸어온 이곳은 반주증을 주는 곳이다. 유적지 같기도 하고 3유로에 반주증을 발급해 준다. 공식 인증서는 아니고 이곳의 기념 같은 인증서이다.
안에는 조금 한 박물관이 있고 반주증 3유로가 약간의 입장료 개념으로 받는 것 같다. 짧게 구경을 하고 화장실도 들리고 인증서를 받았다.
어차피 완주를 할 것이기 때문에 필요할까 싶었지만 막상 이렇게 보니 나쁘지 않은 퀄리티를 보여줬다. 굳이 갈 필요는 없지만 기념 삼아 가보는 것도 좋은 것 같다.
360km가 남았다. 이제 드디어 절반을 넘게 걸은 것이다. 오늘은 일요일이다. 이 나라는 일요일에 운영하는 곳이 거의 없다. 마트도 닫고 작은 슈퍼마저도 운영을 안 한다. bar도 닫는 곳이 대부분이다. 큰 도시라면 조금 다르겠지만 작은 마을들은 대부분 닫는다.
한국에 살다 오면 이렇게 답답할 수가 있나 싶다. 필요한 게 있어도 살 수 없고 그냥 내일까지 버티던가 미리 사놔야 한다.
오늘은 취사가능한 곳으로 가서 라면을 먹고 싶었는데 취사가능한 알베르게는 문을 닫았다. 할 수 없이 이 마을에 하나 있는 알베르게로 왔는데 침대가 아주 만족스러웠다. 일반 호스텔 정도의 컨디션이었다.
오늘 딱히 먹은 게 없어 알베르게 식당에서 버거를 시켰다. 스페인 와서 먹은 버거 중 가장 맛있는 것 같다. 패티도 두껍고 부드러웠다. 베이컨과 치즈가 들어 있으며 빵도 맛있었다.
내가 왜 감자를 싫어했나 했더니 평소에 얘네 감튀는 소금도 안친 그냥 감자만 준다. 근데 오늘 케첩이랑 먹어보니 내가 왜 질렸는지 알 것 같다. 케첩이 없어서였다..
한숨 자다가 저녁시간이 되어 저녁 먹으러 내려왔다. 버거를 먹고 자서 그런지 순례자 코스는 당기지 않았고 피자와 감튀 시켜서 나눠먹었다. 갓 튀겨 나온 감튀는 그래도 맛있었다.
이제 2일 있으면 레온이다. 절반이상 걸었고 이제 후반부 시작이다. 레온부터 사리아까지 쉬운 길은 아닐 것 같지만 별로 안 남았으니 열심히 달려야겠다.
20일 차 베르씨아노스 델 레알 까미노까지 총 417.3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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